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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READ 2023. 5. 7. 22:50
소위 보편적 가치라는 표현은 그 어느 때든 조심스럽게 써야 했음. 역사적으로 힘 있는 자들에게 보편적인 것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특정적인 경우가 많았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가치가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면, 현재와 미래가 없다는 것이 한 예. 이러한 시각을 T. S. Eliot은 Four Quartets 중 "Little Gidding"에서 피력함 원숙한 시기에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지만, 30대에 그가 The Waste Land에서 고전의 조각들로 보여준 역사의식의 흔적을 볼 수 있음. 그중 한 대목. What we call the beginning is often the end And to make and end is to make a beg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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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을 무시한 해석READ 2023. 3. 23. 09:01
영화 도망자(The Fugitive, 1993)는 1960년대 약 5년에 걸쳐 방영된 같은 제목의 텔레비전 시리즈(1963-7)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아내 헬렌 킴블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의사 리처드 킴블이 진범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원작을 몰라도 이 영화 한 편으로 전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의 완성도가 높다. 범죄 영화로서 이 작품이 갖는 중요성을 차치하고 뜻밖에 이 영화는 문맥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해석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시카고 경찰은 집에 혼자 있던 헬렌이 총에 맞아 살해된 사건을 수사하면서 처음부터 리처드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 틀에 맞춰서 결론을 내린다. 즉, 집에 강제 침입 증거가 없고, 바닥에 있던 총, 총알, 집안 구석구석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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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펄로에서 생긴 일READ 2022. 5. 16. 22:21
버펄로에서 산 적은 없지만 약 70 몇 마일 떨어진 로체스터라는 곳에서 몇 년 살았음. 그리고 당시 뉴욕주 북부(업스테이트 뉴욕)의 인종 문제에 대해 피상적으로나마 알게 되었음. 그때는 20세기 말. 20여 년이 넘은 지금, 버펄로에서 생긴 일을 보면, 역사와 사회가 그래도 나아지는 면이 있다는 내 믿음에 대해 자문하지 않을 수 없음. 백인우월주의에 경도되어 흑인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한 이는 18세 고등학생. 그보다 며칠 전에는 댈러스에서 다시 한번 한인 가게 총기 습격이 발생함. 이는 끊이지 않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증오 범죄의 연속선상에서 볼 수밖에 없음. 최근 몇 년 동안 두드러지게 확인되어 왔지만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혐오, 폭력, 차별 의식은 구세대의 것이 아님. 라는 변명 자체도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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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봄학기 1주 완료READ 2021. 3. 6. 20:14
어떤 면에서는 학기보다 바쁘게 1월과 2월을 보낸 후 정신없이 맞은 새 학기. 1. 그동안 종종 강의를 했었던 학관의 강의실들이 재공사 준비를 마친 모습(2월에 촬영). 첫 번째 사진의 공간은 구조가 희한해서(강의실 뒤편의 문을 열면 자그만 공간이 있을 듯), 늘 학생들에게 농담하곤 했고 두 번째 공간은 상대적으로 강의를 많이 했던 곳. 편안하고 좋은 기억도 있었고... 학생들에게도 수많은 세월 동안 사연이 많았을 공간들이 빈 채로 놓은 모습을 보니 묘한 감정이... 2. 나보다 연륜이 높으신 선생님들께서 책을 번역하신 경우는 여러 번 봤지만, 동료들이 공역을 해 번역서를(책소개 클릭) 출간한 경우는 처음. 현재 몇 chapters 읽는 중. 번역은 능력상 할 수 없을 듯... 번역하신 분들의 노고에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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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READ 2021. 1. 2. 11:03
세상의 민낯을 본 뒤에 무엇을 할까 원로 영문학자 백낙청 선생님의 글임. 개인적으로는 뵐 기회가 없었지만, 이 분의 글을 학부시절부터 조금씩이나마 읽어 온 듯.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통찰하심. 지적하신 문제 중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부분은 아래의 것. 경제관료들, 특히 예산권을 틀어쥔 관료들의 실상도 드러나는 중이다.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매우 양호한 축인데도 코로나 사태로 거의 사경에 처한 사람들 도와주자고 할 때마다 ‘재정건전성’을 들고나와서 한푼이라도 덜 주려고 한다. 케이(K)방역이 진단과 추적에서 모범적인 성과를 내면서도 국민들의 전폭적인 협조를 얻는 데 한계를 보이는 것도, 정부 관료가 서민을 ‘죽게 내버려두는’ 속마음으로 재난 극복에 임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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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대선READ 2020. 11. 8. 20:18
다른 나라 대선 맞는데, 그 영향이 태평양 건너까지 오는 대선이었음. 2000년 Gore-Bush 선거 이후로 이렇게 집중적으로 미국 대선을 본 적이 없었던 듯. 매우 타이트했고 긴장감 흘렀던 선거였음. 편을 떠나 표 흐름만 본다면 변화가 극적이고 흥미로웠음(물론 진 쪽에선 원통하겠지만). 야구로 치자면 이긴 쪽에서 거의 8회나 9회에 빅이닝을 만들어내어 역전한 셈. 몇 달간 미국 대선을 보면서 상식적이고, 과학적이며, 논리적인 가치도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정성을 (그리고 돈을) 꽤 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함.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아이러니 같겠지만, 그만큼 잘못된 정보가 사람들의 마음에 너무 깊숙이 쉽게 들어가기 때문. 한 가지 추가로 흥미로웠던 점. 두 후보 포스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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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READ 2020. 10. 18. 11:32
이번 George Floyd 사건으로 전국적인 항의 시위가 있었는데, 그 와중에 약탈 사건도 실은 적지 않았음. 아래 NY Times 기사에서는 그중 한 사건을 조명하면서 미국 사회 내에 뿌리 깊은 인종차별, 유색인종 간의 긴장과 경쟁 관계에 대해 조명함. 바로 한국인 이민 1세대 남성이 소유하고 흑인 여성이 일하는 여성미용품 가게의 이야기.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한국인 이민자의 인생과 고난은 자식 세대가 미국인으로 정착했음에도 21세기에 여전히 진행 중. 그리고 흑인 여성의 경험을 통해 드러나는 생활 속 인종 코드, (여성미용품 도매와 유통을 예로 든) 미국 내 한국계 공동체와 흑인 공동체 간의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가 기사에 잘 드러남. 이 둘은 고용자와 피고용자 관계임에도 인종을 넘어서 같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