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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관 4층에 붙여져 있는 대자보 이 블로그에는 헌법의 의의라는 글이 있다.
여기서는 구속된 러시아 스파이를 변호하는 한 중견 미국인 변호사의 실화를 극화한 영화 Bridge of Spies를 소개한다. 이 영화의 한 장면에서,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외국 이민자의 후손이 어떻게 <미국인>으로 규정될 수 있는지, 그 근거를 주인공 변호사가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 . . what makes us both Americans? Just one thing. One, one, one.
The rule book. We call it the Constitution... and we agree to the rules,
and that's what makes us Americans. It's all that makes us Americans
so don't tell me there's no rule book... and don't nod at me like that,
you son of a bitch.
즉 헌법에 명시된, 모든 상이점을 넘어서는 공동 가치로 미국 시민의 정체성이 정의된다는 취지.
바쁜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추상적 내용을 체감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더 와닿을 수 있는 다양한 법률, 그것의 준수와 적용 수준도, 사회 수준마다 다르겠지만, 완벽할 수 없다.
게다가 인간의 언어로 쓰인 텍스트는 늘 그렇듯 합리적인 범주 내에서도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법적 공방이라는 게 있고, 사안에 따라 3 심제를 둘 텐데
이는 인간으로서 불가피한 실수와 오류를 줄이기 위함이지, 최종 결과가 늘 완벽하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인간과 인간 사회 자체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기에, 모순과 부조리는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커다란 사회적 일탈이나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집단 지성은 개인과 사회가 지니고 지켜야 할 근원적인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만 봤을 법한, 문장들을 다시 떠올리며 그 속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김한다.
반면 그 반대에 선 이들은 학력,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궤변과 망상 앞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낸다.
이들에게 헌법은 가상 세계 속에서 무의미한 단어들의 열거 혹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텍스트가 된다.
하지만 헌법에는 과거 죽은 자들의 희생, 피와 생명이 스며들어 있다.
이 텍스트의 언어는 그것이 심각하게 위반될 때 거짓말처럼 엄청난 힘을 발휘해서,
단어 하나하나가 한국이라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공유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하지만 가장 의미심장한, 공동체적 가치를 재확인하게 한다.
이게 2024년 12월부터 우리가 목격하고 경험하는 바이다...
위 사진은 학관 4층에 있는 대자보 모음.
대학가에 아날로그 방식의 의사소통 수단이 재등장한 것이 매우 흥미롭다.
Materiality를 가진 텍스트 속 언어의 힘은 아직은 유효하다는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