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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의 신간이 나온 듯.
지난 번 산 책도 끝까지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이 내게 더 잘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겨울방학 때 아마도 시간이 날 듯...
아래 신간 관련 인터뷰를 읽어보면
[미디어다음]영국을 들썩인 장하준의 직설, “세탁기가 인터넷보다 더 변혁적이다”
경제와 발전에 관하여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적잖은 것들이
하나의 myth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요점 중 하나인 듯.
아래는 교육 관련 대목:
'지식 기반 경제' 시대라는데, 교육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지식 기반 경제론'은 신화다. 특히 영미 계통 국가들에서 제조업의 소외 현상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온 것으로 본다. 인류의 경제는 언제나 지식 기반 경제였다. 1000년 전엔 중국이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였는데 남들이 안 가진 나침반·화약·종이 등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은 언제나 경제에 중요했고, (지난 30년 동안에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세계에서 매우 잘사는 나라 중 하나인 스위스는 1990년대까지 대학 진학률이 OECD 평균의 절반 이하였다.
블레어 '교육 정책'에 대한 요즘 평가는?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영국 젊은이 중 3분의 1 정도가 자신의 대학 졸업장이 필요하지 않은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졸자들이 예전에는 대학 졸업장이 필요없던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순수하게 경제적 측면에서 본다면 자원 낭비다. 토니 블레어가 기대한 대로 '교육 강화로 생산성이 더 높아졌는가'를 따져보면, 일단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실망스럽다. 서구의 '신진보'들은 대학 등 고등교육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강화해서 '기회의 균등'을 이뤄냈다고 주장해왔다. 심지어 다른 부문에 대한 복지 지출은 삭감했다.
'기회의 균등'은 인류의 위대한 업적이다. 장인이나 상인이 과거시험을 볼 수 없었던 한국이나 흑백 차별로 흑인이 좋은 직업을 가지지 못했던 남아공을 봐라.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가고 피 흘리며 (누구나 어떤 직업도 가질 수 있는) 기회의 균등을 이뤄낸 것이다. 그러나 기회의 균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과의 균등'도 필요하다는 이야기인가.
예를 들어 누가 나에게 와서 올림픽 마라톤에서 일등하면 상금으로 1조원 받는 '기회'를 주겠다고 하면 어떨까. 물론 '한국인이니까 올림픽 출전 금지'보다는 낫지만, 내게는 크게 의미 없는 제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기회는 균등하니까 너도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어'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상급식·무상교육은 좋은 거지만, 학교가 해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부유한 학생들은 집에서 가정교사나 학원, 부모에게 보충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가난한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모든 가정에 어느 정도의 소득이 보장되고 생활이 안정되어야 학생들도 공정한 조건에서 경쟁하며 '기회의 균등'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블레어 정책은 교육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강화하는 대신 다른 복지 혜택은 줄였다. 어떻게 보면 '기회 균등'을 주는 것 같지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켜버린 것이다. 어느 정도는 '결과의 균등'이 담보되어야 '기회의 균등'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결과의 균등'을 담보하는 '기회의 균등'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해당 사회의 맥락에서 의미 있는 수준으로 부여되는 사회보장, 즉 복지국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