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을 같이 한 친구들. 오른쪽 두 친구는 오랫동안 내 방을 지켜줌. 원로 영문학자 백낙청 선생님의 글임. 개인적으로는 뵐 기회가 없었지만, 이 분의 글을 학부시절부터 조금씩이나마 읽어 온 듯.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통찰하심.
지적하신 문제 중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부분은 아래의 것.
경제관료들, 특히 예산권을 틀어쥔 관료들의 실상도 드러나는 중이다.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매우 양호한 축인데도 코로나 사태로 거의 사경에 처한 사람들 도와주자고 할 때마다 ‘재정건전성’을 들고나와서 한푼이라도 덜 주려고 한다. 케이(K)방역이 진단과 추적에서 모범적인 성과를 내면서도 국민들의 전폭적인 협조를 얻는 데 한계를 보이는 것도, 정부 관료가 서민을 ‘죽게 내버려두는’ 속마음으로 재난 극복에 임하고 있지 않나 하는 불신을 사기 때문은 아닐까.
이건 경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님. 관료주의적 사고가 퍼지는 곳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현상임.
숫자(통계, 랭킹 등등)는 현황을 알려주고 방향을 잡을 때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유일한 것은 아니고 그래서도 안됨. 숫자가 짚어주지 못하는 것이 있음.
왜? 당연하지만 인간은 숫자로 설명될 여지는 많아도 숫자로 온전히 환산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
어떤 것의 본래의 취지, 근본적인 목적을 망각하는 이들이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일 때 과도하게 숫자에 기댐. 숫자에 의존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미덕은 안정과 효율성. 그 안정과 효율성을 위해 간과되는 요소(가령 질적인 측면과 같이 수치로 잘 안 잡히는 결과 등등)에 무지함.
물론 그들의 지적에도 귀 기울여야 할 점이 있음. 다만 그들로서는 숫자는 어기면 안되는 것이기에 근본적인 <왜>라는 질문을 논의하기 힘듦. 그래서 그런 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결국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게 됨.
그런 사람들은 (논의의 여지와 별개로) 숫자에 관한 Krugman의 시각을 아예 무시할 지도...
www.nytimes.com/2020/12/03/opinion/biden-republicans-debt.html
Opinion | Learn to Stop Worrying and Love Debt
Why you should ignore the coming Republican deficit rants.
www.nytimes.com
다시 말하지만 숫자는 중요함. 인문학 연구에서도 예외 아님.
하지만 숫자를 지혜롭게 활용할 줄 아는 이들은 숫자로부터 벗어난 사고를 할 수 있는 이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