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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중에 교내 신문사로부터 덕후 교수 관련 인터뷰 요청이 들어옴. 아직도 어떻게 내게 연락하게 되었는지 의아하지만 -_- 여하튼 연구년 기간이었고 좋은 인터뷰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음.
일본 오타쿠 개념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한국의 덕후 개념과 거리가 있어 단순 적용은 어려움. 하지만 아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아즈마 히로키가 쓴 오타쿠 정의의 일부를 읽어보면 (일본에 대한 내 지식 부족으로 설명이 더 있었으면 하지만) 덕후에 대해 쉽게 생각하면 안되겠고 한류에 대한 국내 시각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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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계 문화의 존재는 한편으로 패전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의 주체성의 취약함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끔찍한 것이다. 왜냐하면 오카쿠들이 만들어낸 '일본적'인 표현이나 주제는 실은 모두 미국산 재료로 만들어진 이차적이고 기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존재는 다른 한편으로 80년대로의 내셔널리즘과 연결되어 세계의 최점단에 선 일본이라는 환상을 가져다주는 페티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오타쿠들이 만들어낸 의사 일본적인 독특한 상상력은 미국산 재료로 출발해 지금은 그 영향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독립된 문화로까지 성장했기 때문이다.
오타쿠계 문화에 대한 과도한 적의와 상찬은 둘 다 여기에서 비롯된 것인데, 결국 양자의 근저에 있는 것은 우리의 문화와 패전 후 미국화와 소비사회화의 물결에 의해 뿌리째 변해버렸다는 것에 대한 강렬한 불안감이다. 지금 우리 수중에 있는 것은 이미 '미국산 재료로 만들어진 의사 일본' 밖에 없다.
우리는 패밀리레스토랑이나 편의점이나 러브호텔을 통하지 않고서는 일본의 도시풍경을 생각할 수 없으며, 또 그 빈곤함을 전제로 하여 왜곡된 상상력을 오랫동안 가동시키고 있다.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으면 오타쿠 혐오가 되고, 반대로 그 조건에 과도하게 동일시하면 오타쿠가 되는 그러한 매커니즘이 이 나라의 서브컬처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세대 이하의 사람들은 대개 오타쿠 선호인지 혐오인지가 분명하게 나눠지는 것이다. (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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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버 마리오네트>라는 1990년대 후반 TV 애니메이션 작품 논의 후]
즉 이 작품의 주제는 [...] 진짜로 보이는 가짜와 본 적 없는 진짜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이다.
이 설정은 커뮤니케이션 일반의 문제뿐 아니라 오타쿠의 세계관을 아주 잘 우화화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상상력을 통해서일 뿐이지만 충분히 성적이며 또 충분히 감정이입이 가능한 캐릭터가 가까이 존재한다. 한편 멀리에는 현실의 이성이 있지만, 그것은 인공위성 처럼 손이 닿지 않는 것이며 비록 손이 닿는다 해도 그때는 오랫동안 쌓아올린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을 교환조건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이 양자택일의 느낌은 [...] 특히 미소녀 게임[...]이나 피큐어의 커다란 붐을 맞이한 남성 오타쿠들에게는 상당히 실제에 가까운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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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계 문화에 대한 검토는 이 나라에서는 결코 단순한 서브컬처의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 거기에는 실은 일본의 전후처리, 미국의 문화적 침략, 근대화와 포스트모던화가 가져온 왜곡이라는 문제가 모두 들어 있다. 따라서 그것은 또한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문제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