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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해외에 나간 것은 삼십대 중반에 들었을 무렵으로 당연히 외국어는 잘하지 못했다. 십대라면 그곳에 있기만 해도 공기를 빨아들이듯 저절로 말을 습득하겠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지금도 원어민처럼 유창한 대화는 무리다. 한 시간 정도 얘기하면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사용해서 그런지 턱이 점점 아파온다.
그런데 그래서 뭔가 불편을 느끼는가 하면 딱히 그런 일은 없다. 영어는 지금 영미인을 위한 언어라기보다 랑구아 프랑카(세계 공통어)쪽 기능이 오히려 크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말해 '의미가 통하면 그걸로 오케이'라는 식이 된다. 그렇게 되면 중요한 것은 '유창하게 얘기하는' 것보다 '상대에게 전할 내용을 자신이 얼마만큼 제대로 파악하는가' 하는 것이다. 요컨대 아무리 유창해도 의미가 불명확하거나 무미건조하면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다. 내 영어는 유창하지 않지만, 의견만은 (문자 그대로) 팔아도 될 정도로 많이 갖고 있다보니 상대는 나름대로 귀를 기울여주는 것 같다.
내 이야기? 비슷한 대목이 있지만, 노우. -_- 무라카미 하루키. 유사한 내 경험을 학생들에게 해준 적이 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라면 더 설득력이 있을 수도... 언어구사력도 중요하지만 그 언어가 담아야할 내용이 중요하고, 남들이 들을 만한 내용을 갖기 위해서는 사고 훈련과 생각의 깊이가 매우 중요하다는 취지. 둘 모두 중요하지만 때로는 언어구사력에 과도한 중요성이 부여된다는 인상을 받음.
최근 몇 년 동안 나온 글 외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집을 거의 모두 갖고 있음. (공부를 위해 읽은 면이 강했던) 영미작가 외에 나의 90년대 독서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 ㅅㅇ 씨 덕분에 그의 에세이를 오랜만에 감상. 감사.
본문 54-55. 책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