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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시절에 산 책은 아직도 다른 집에 있어서 기회가 될 때마다 가져다 보는 중.
몇 달 전 우연히 <녹색평론선집> I집(1993)발견. 왜 샀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음. -_-
우연히 펼쳐 보니 한 에세이를 줄을 쳐가며 읽었음. 몇 대목 소개. 띄어쓰기가 요즘과 좀 다름:
[감성과 이성의] 이분적 사고는 대상과 자신을 통제하는 데에는 성과를 어느 정도 얻었다 하더라도, 하나의 중요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욕망"이 가지고 있는 "확산하여 연속성에 이르는 힘"의 상실이다. 기존의 사고방식에서는 욕망은 이성에 의해 순종되는 부분만이 승인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억압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은 늘 "자연적" 욕망에 대한 일종의 공포 위에서 움직여왔으며, 이것은 중국 봉건시대의 이성이 항상 백성(民)들의 폭동가능성에 대해 벙어진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것과 같은 구조이다. 이러한 억압적 체계와 사고 아래서, 욕망은 먹을 것과 여색에 대해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기 때문에 악의 길로 열려있다고 중상모략을 당해 왔다. 욕망은 "소유"와 파괴의 관점에서만 파악되었다. (142)
[...]
... 나의 신체와 우주는 하나의 기로 관류되어 있고, 우리의 자아를 이 "기"에 밀착시킬 때 비로소 욕망과 정신은 하나가 되고 물질과 정신이 하나가 된다는 견해는, 여전히 새로운 인간관과 세계관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아진다.
오늘날의 리얼리즘과 유물론이 타성적 지성의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고, 실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저항과 혁명의 인성론적 기초를 모르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적인 것에 기초하는 것이 유물론이라고 한다면, 인간에게서 물질적인 것(hyle)의 흐름(원래 hyle는 flux를 본질로 한다), 욕망의 유동성과 유전성에 기초하지 않은 것은 해방의 기초가 없는 해방을 주장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물론적 인간관은, 푸르른 들 판에 누워 하늘을 호흡했던 기쁨을 제거하고, 지성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그 억압된 추억의 소리를, 그것에 대한 사회적, 심리적인 억압장치의 폭로와 함께 전달하는 이론이다. 어두운 감옥속에서, 고문실에서, 답답한 강의실속에서, 사랑없는 미소 앞에서, 빈 밥그릇 앞에서 소리지르는 것은 바로 저 욕망이다. 영원하고 무한한 세계와 관계맺고 있는 욕망은 역사적 영역속에 깊숙히 끼어들어, 고뇌와 불안의 체계와 맞붙어 싸운다. (146)
그래서 저자가 누군가 봤더니 철학과 이규성 선생님. -_-
이 책을 찾은 후 며칠 지나 우연히 사석에서 뵈었을 때 이 글에 대해 여쭈니 당시에는 논지에 대해 이견이 많았다고 하심.
시대가 많이 달라져 전보다는 더 받아들여지겠지만, 요즘도 욕망에 대한 선입견은 꽤 견고한 듯...
참고로 위 책은 최근에 개정판이 나옴. 책 소개는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