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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은 용도폐기된 관념상의 산물? 특정인의 타고난 성향에 대한 것? 감정에 치우진 것? <도덕에 관한 에세이> (책소개 클릭)는 도덕 관련 통속적인 이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의도, 의무성, 이성적인 판단 측면을 조명함. 몇 부분은 내 (부도덕한) 능력 탓인지 번역 탓인지 원문 탓인지 잘 이해가...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도덕을 논하는 책을 읽는 의미는? 무작위로 몇 문단 소개. 진한 글자는 원문 강조.
도덕에 대해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도덕을 가르치는 것은 엄밀히 말해 불가능하다. 플라톤은 자기 식으로 덕이란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진정한 도덕은 말이나 담론 따위가 아니다... [...] 실제로 우리는 갖가지 논법들로 무장하고, 무엇보다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언제라도 증명해 보일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같이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왜냐하면 결국 의무에는 그것을 행해야 한다는 것 이외의---하지만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다른 어려움은 없기 때문이다...... (11)
엄밀히 따질 때 훌륭한 의도에서 행해진 게 아니라면 절대적으로 훌륭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한 행동에 대한 의도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그 사람의 작품이나 성공 여부에 따라서가 아니다. 그걸 가릴 수 있는 것은, 계획한 어떠어떠한 목적에 이를 수 있는 그의 재능이 아니라 그의 의도 자체이다. [...] 선의는 의무에 대한 순수한 존중심에 따라 행동할 것을 결심하는 태도이다. (61)
도덕성에 접근한다는 것은 행동을 수행하기 전에 그것을 판단하고 평가하기 위해 행동들을 미리 그려볼 수 있고 자신 앞에 놓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더구나 그것은 행동의 원칙 뿐 아니라 그 행동의 결과 역시도 자신의 행동과 연결지으면서 모든 판단의 조건인 '관계들'을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처럼 헤겔에게 있어 도덕은 루소가 보는 것처럼 즉각적인 감정이 아니라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지식이다. (78)
분명 호의는 우리로 하여금 선행을 베풀고자 하는 타인에게로 향하게 한다. 하지만 이것이 자연스러운 성향에 의한 것이라면 외면상으로 보기에도 선해 보이는 이러한 우리의 행동은 전혀 도덕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게다가 호의에 언제나 보상이 따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 호의는 에고이즘의 아주 교묘한 형태일 수도 있다. 타인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다. 그것은 거의 드러낼 수 없는 비밀스러운 선행, '내밀한 만족'이다. 이것은 만족 이상의 쾌락으로 여기에는 권력에의 엉큼한 매혹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타인에 대한 이처럼 '일그러진' 선의의 감정은 진정한 도덕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감정은 그 타인이 실제로 독립성을 가지게 되면 곧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타인의 복종(종속)이 있을 때에만 호의도 있는 것이다. 그 사람 자체는--내가 호의를 베푸는 대상--목표가 아니라 나의 지배성향을 만족시켜주는 수단이 된다. (7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