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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트렉 Star Trek과 셰익스피어 ShakespeareSEE 2023. 6. 10. 22:35
이 블로그에는 <스타 트렉 Star Trek> 포스트가 두 개 있다.
첫 번째 포스트가 <스타 트렉: 오리지널 시리즈>(Star Trek: The Original Series, 1966-1969)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죽음에 대한 내용이었다면, 두 번째 포스트는 <스타 트렉: 다음 세대>(Star Trek: The Next Generation, 1987-1994, 이하 TNG)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TNG에 대해 논문이 나와서 두 번째 포스트를 썼던 기억이 난다.
오리지널 시리즈는 상징적 의미도 크고 최근 영화 리메이크로 새로운 세대에게도 큰 호응을 받았지만, 사실 텔레비전 시리즈로는 TNG가 오리지널 시리즈와는 비교될 수 없는 정도의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스타 트렉의 다른 시리즈들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졌지만, TNG의 위상은 여전히 컸다. 그래서 TNG에서 선장이었던 피카드Picard를 단독 주인공으로 한 텔레비전 시리즈 Picard가 2020년에 만들어졌을 때, TNG 시리즈가 종료된 지 대략 26년 정도 지났음에도 많은 주목을 받았고 첫 번째 시즌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시즌은 여러모로 실망을 안겨주었는데, 그 때문에 올봄에 방송되었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시즌에서는 아마도 제작진들이 절치부심했던 듯. 이전과 다른 규모와 수준으로 제작되어, 매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13년 전에 쓴 논문을 업데이트해서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제작진이 엄청난 정성을 들인 흔적이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서 선명했다. 특히 세 번째 시즌에서는 마치 TNG의 시즌 8로 여겨질 정도로 핵심 멤버들이 모두 출연하기도 했다.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젊었던 그들은 이제 대부분 노년에 들어섰고, 피카드 역을 맡은 페트릭 스튜워트(Patrick Stewart)는 80대임에도 열정적으로 연기했다. 모든 갈등과 문제가 풀린 후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TNG 멤버들은 피카드에게 축배사를 요청한다.
그 장면 소개:
이 장면에서 피카드가 갑자기 읊는 대목의 출처는 다름 아닌 셰익스피어의 작품 <쥴리어스 시저>(Julius Ceaser):
There is a tide in the affairs of men,
Which, taken at the flood, leads on to fortune;
Omitted, all the voyage of their life
Is bound in shallows and in miseries.On such a full sea are we now afloat;
And we must take the current when it serves,
Or lose our ventures.이 대목에서 부르투스Brutus는 인생의 흐름을 파도에 비유하면서 큰 일을 하기 위해서 이를 잘 파악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아마도).
Picard 장면에서는 대사의 의미가 약간 다를 수 있다. 마지막 시즌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피카드는 자신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 아니라 새로운 모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느 에피소드에서 그동안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사실상 죽음을 기다려왔다고 실토한다. 하지만 그를 포함해서 TNG 인물들은 마지막 시즌에서 여러 갈등과 어려움을 자초하면서까지 문제 해결에 뛰어들고, 그 결과 연방을 구하고 우정과 가족을 지킨다. 즉 피카드는 이 대목에서 노년이지만 주저앉지 말고 필요할 때 결단을 내려 언제든지 다시 모험을 떠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했다고 볼 수 있다(정작 스튜워트 본인은 설사 새 시즌이 결정되어도 고령으로 출연하기 쉽지 않다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고 하지만 -_-;;)
스튜워트의 셰익스피어 대사 암송은 우연이 아니다. <스타 트렉>이 미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시리즈 중 하나이지만, 그는 영국 태생으로 1960년대부터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Royal Shakespeare Company의 일원으로 활약했고, 2008년에도 <햄릿> Hamlet의 클로디어스Claudius를 연기하기도 했다. 그가 Picard의 다른 시즌 프로모션 행사 때에 셰익스피어 작품을 암송한 적이 있는데, 이를 담은 짧은 동영상이 유튜브를 올라와 있기도 하다.
TNG 인물들은 아마도 다른 작품에서 다시 한 자리에 모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Picard의 마지막 시즌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스튜워트의 셰익스피어 대사 암송은 인상적일 수밖에 없는데, <스타 트렉>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그 자체로서 축적된 수 십 년의 전통만이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해준다. 그리고 내가 이 다른 나라의 대중문화에 왜 흥미를 갖게 되었는지를 오랜만에 다시 기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