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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대학원 수업 시절 이후로 오랜만에 읽어봄. 학교 서점에서 구입.
영문학자이면서도 역자가 최근에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서를 출간해서 그런지
<시학> 본문 보다 뒤에 이어지는 각주의 분량이 더 많은데
문학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기도 하면서 흥미로운 분석이 많음.
흥미롭게 읽었던 두 부분에 대한 저자의 설명:
이 번역에서 헬라어 테크네techne를 '기술'로 옮긴다. 로마인들은 이를 아르스ars로 옮겼고,
유럽인들은 이를 아트art로 옮겨 쓰고 있는데, 동양의 우리는 이를 다시 '예술'로 옮겼다.
우리는 '예술'을 실생활을 멀리 떠나 영감에 의존하는 천재들의 신비로운 능력 발휘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테크네'가 오늘의 기술을 뜻하는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어원이 된 사실만 보더라도
이 말은 그런 낭만적이고 초월적인 능력이 아니라 배울 수 있고 훈련에 의하여 세련될 수 있는
'기술'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것이 '기술'이 아니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유럽에서도 'art'가 신비로운 능력을 뜻하는 말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낭만주의 발흥 이후의 일이다.
그렇게 변질된 개념을 우리가 받아들였던 것이다. (95-96)
우리가 주의할 점은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가 철학 그 자체와 맞먹는다는 말을 하지 않고
다만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라고 했다는 사실이다. '철학적인 것'은 '철학' 자체를 뜻하지 않는다.
철학자인 그가 시와 역사의 비교 우위 겨룸에서 시의 편을 들어주었을 뿐이다. 철학은 물론 최상위를 차지한다.
후세의 많은 비평가들은 이 구절을 마치 시가 철학을 포함하여 어떤 글보다도
심각하고 철학적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해석했다.
다시 말하면 시가 '진리'에 대한 배타적, 특권적 접근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