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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비평글 혹은 문화관련 글에서 자주 볼 수 있을 법한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보이지 않음, 유령화,
사회 구성원들 간 활동영역 경계의 불명확성, 작은 목소리의 중요성 등등의 개념으로
현재의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조망한 글 몇 대목:
내가 그러했듯이 대개 중산층은 중산층과 어울린다. 그러다 보면 이 사회 밑바닥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탈출할 수 없는 절대 빈곤에서 신음하는 수백만 명이 보이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다뤄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 이야기는 재미없다(?).
당신이 환경에 좋은 일 하겠다고 쓰는 재생 휴지는, 퇴행성 관절염은 기본이고 온갖 척추 질환에 시달리는 수십만 명의 할머니들이 길바닥에서, 지하철에서, 그리고 상점에서 사정사정하며 얻어 하루에 겨우 1만~2만원 받아가며 모은 폐지다. 당신이 이용하는, 세계적으로 깨끗하기로 유명한 서울 지하철은 하루 12시간 일하고 겨우 80만~90만원 받는 비정규직 할머니들이 닦아놓은 것이다. 당신은 대학생인가? 대학 교정은 누가 청소하는가? 비정규직 워킹푸어 할머니들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하루 9시간씩 일하고도 한 달에 50만원도 받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사회취약 계층은 유령이 아니다. TV·신문·미디어, 그리고 사회적 담론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지만 그들은 이 사회의 무려 20%(절대 빈곤층 10%, 상대 빈곤층 20%) 정도를 점하고 있다. 우리는 왜 그들을 유령 취급하는가? 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1명은 100만원 벌고 나머지 99명은 1만원 버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35%는 자신이 결국 상위 1%에 속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상위 1%에는 1%만이 속할 수 있다. 오히려 지금 시스템에서 당신은 아마 60%의 확률로 빈곤한 노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여전히 나는 1% 상위 그룹에 속할 것이라고 꿈꾸면서 이 지옥 같은 현실을 외면할 것인가?
이 글쓴이? 영문학자? 사회/문화학자? 사회운동가?
30대 초반의 한의사...
글 원문: 빈곤층 위해 ‘작은 목소리’라도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