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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거짓말 같이, 하지만 늘 그랬듯이, 벌써 12월이 되었고 학기와 해가 마무리되어 감. 연구년이라 종강 날짜가 다가온 줄도 잘 몰랐지만 동시에 학과 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 못해 기분이 모호...
하지만 현실은 매우 빠르게 대학(인문학)에 불리하게 진행되어 가는 듯. 인문대에서 영문학과의 비중은 어느 대학이든 남다른 경우에 속해왔지만 최근에는 규모가 꽤 되는 몇몇 수도권 대학의 영문학과 정원이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되었다는 소식도 들림.
게다가 대학 역시 사회의 단면이고 사회 수준을 반영하기에 갈등이 없을 수 없고 특히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어두운 소식들은 대학을 바라보는 그나마 긍정적인 시각들을 상쇄시킨다고 보임.
좀 더 큰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물론 대학이 현대 사회에서 차지해온 위치가 재조정되는 건 당연한 듯. 현대 세계에서 대학의 위상, 역사, 특징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알기 쉽게 정리한 글 하나: 대학이라는 신경안정제에 중독된 사회
기사의 몇 대목:
예전에는 우리만 유독 대학을 밝히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이미 대학은 정말 공부가 하고 싶은 친구들만 가는 곳은 아니게 됐다. 아프리카의 오지만 빼고 대학 진학률은 이 행성 전체에서 치솟는 중이다. 2012년까지 20년 동안 전 세계 평균 대학 진학률은 14%에서 32%로 늘어났다. 50%가 넘는 곳도 다섯 나라에서 54개국으로 불었다. 대학 입학자 증가율은 자동차 소비 증가율을 앞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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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에서 대학 졸업장은 여전히 상류층으로의 초대장이지만 부자 나라에서는 아니다. 이를테면 이제 대학에 가는 것은 공격이 아니라 방어다. 학위를 가지지 않는 게 매우 위험해졌다. 미국과 영국의 성인 14%가 석사 학위 이상의 학력자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는 중이다. 2008년 미국의 대출 위기는 학자금 폭증이 한 원인이었다. 미국의 학자금 대출은 신용카드 대출액을 넘어섰다. 부자 나라의 중산층은 자기 노후의 안락을 아이들 교육비로 대체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면 그들의 삶이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탈출구가 없으니 대학에 병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대학이 일종의 신경안정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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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정부와 대학은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당장의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대학이 마주한 현실은 엄혹하다. 사람들은 희망을 찾아서가 아니라 절망을 잊으려고 자녀를 대학에 밀어넣는다. 교육과 일자리를 둘러싸고 외줄타기 경쟁을 벌이는 학생과 학부모는 대학이 과연 창의력을 길러주는지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한발 잘못 내디디면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나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리라는 두려움에 떨며 모험을 꺼리고 대학이라는 비교적 안전한 선택을 한다. 그런 학교에서 학생들은 행복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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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금융 시스템처럼 세상의 돈을 마구 빨아들이지만 신기하게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다. 대학은 당대 자본주의의 첨병, 자화상, 심하게는 합병증 맞다.
소위 포스트모던 시대에 대중문화 양식을 통하여 현실을 파악하는 (혹은 그렇다고 믿는) 경향은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어린 시절 각인된 대학의 모습은 텔레비전 드라마 버전의 The Paper Chase 즉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이었음.
그 당시에는 잘 몰랐겠지만 실은 로스쿨 학생들의 이야기이기에 대학원생들이 주인공임. 몇 년 전에야 극장판(1973) DVD를 구해서 제대로 볼 수 있었고 그 유명한 질의응답 장면을 보게 됨.
John Housman이 연기한 Charles Kingsfield 교수의 단도직입적 질문에 두려워하면서도 그 훈련을 통해 성장하여 절대적 권위를 자랑하는 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학생들의 복합적인 심정이 드러남.
(Housman은 연기로 아카데미 상을 받았지만 Head of the drama division of the Juilliard School로서의 공로가 컸다고 함)
아래 사진에서 Kingsfield 교수는 자신의 수업 방식과 목표를 밝히고 있음. 학생들은 몰두하면서도 약간 멍한 표정으로 경청 중...
극중 Kingsfield 교수의 전공은 계약법. 일부 그의 발언은 굳이 법이 아니더라도 대학 교육을 위해 참고할 수 있는 말...
The study of law is something new and unfamiliar to most of you.
Unlike any schooling, you've ever been through before, we use the Socratic Method here.
I call on you, ask you a question and you answer it.
Why don't I just give you a lecture?
Because through my questions, you learn to teach yourselves.
Through this method of questioning, answering, questioning, answering, we seek to develop
in you the ability to analyze that vast complex of facts that constitute the relationships of
members within a given society.
Questioning and answering.
At times you may feel that you have found the correct answer.
I assure you that this is a total delusion on your part.
You will never find the correct, absolute, and final answer.
In my classroom, there is always another question, another question to follow your answer.
Yes, you're on a treadmill. My little questions spin the tumblers of your mind.
You're on an operating table. My little questions are the fingers probing your brain.
We do brain surgery here.
You teach yourselves the law but I train your mind.
You come in here with a skull full of mush and you leave thinking like a lawyer.
원작 소설을 안 읽어서 소설이 하버드 로스쿨의 현실을 얼마나 반영했는지
또 영화는 원작소설을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 알 수 없음.
하버드 대학의 로스쿨 학생들이 (물론 열심히 하겠지만) 영화에서처럼 하는지도 알 길 없음.
저런 대학의 모습이 현실 속에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있었다고 해도 21세기에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지도 모르겠음.
비교적 분명한 건 저 대사 속에 나와 있는 지적 훈련을 현재 한국의 대학 교실에서 행하기에는
여러모로 적잖은 제약들이 있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한국 사회가 그걸 정말 대학에서 원하고 있는지도 가끔 생각해봄...
최근에 이 영화를 다시 봤을 때 새로이 눈에 들어온 장면은 아래.
한 학기 동안 무지막지하게 밀어부친 후 학생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말 (논술) 시험 채점 장면.
Kingsfield 교수는 수업 시간에는 계약법이 복잡한 현실 속에서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 복잡하게 다루면서
정작 채점은 매우 신속하고 단호하게 하는 모습... -_-